2010년 3월 14일 일요일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성격과 오사카 성 -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임진왜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본인중 한명이다.

그런데 주식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풍신수길)은 아주 흥미로운 사람이다.

(1)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평민으로서 최고 지위에 오른 사람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일본 전국 시대를 풍미했던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에 비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평민으로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출생과 관련해서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천민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는 집안의 배경이 전혀 없었다.


(2)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배운 것도 없었고, 글자도 잘 몰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글자를 배우기는 했지만 더듬더듬 읽는 수준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학문이나 지식이 자신이 갖고 있는 동물적인 본능과 감각을 썩힐 것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글자를 배우는 것을 그리 달가와하지 않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믿을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며, 학문을 통해서 얻는 지식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3)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여자를 밝혔으며, 특히 명문가의 딸들을 애첩으로 많이 거느렸다.

이것은 평민 집안 출신의 컴플렉스때문이었던 것 같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문가의 딸과 귀부인들을 능욕하면서 자신이 일본을 제패했다는 것을 실감했을지도....


(4)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키가 작고 못생긴 남자로서, 오다 노부나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원숭이라 부르기도 했었다.

원숭이라 불렸다는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재주가 많다는 뜻일 수도 있겠지만, 외모가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인것 같다.



(5)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한 원인은, 자신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배경이 없는 평민 출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로서는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만한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보내는게 안전하다고 판단한것 같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일본을 제패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귀족 집안이었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을 침략하는 일을 벌이지 않았다.  오히려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과 화친하면서 조선과의 외교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불만세력을 외부로 돌리지 않고도 권력을 유지할만한 실력과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6)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천하를 잡은후에, 오사카 성(城)을 짓는다.

오사카성의 모습에서는  평민 출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리와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사카 성은 매우 아름답다. 평민 출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허영심과 과시욕이 느껴지기도 하고, 오사카 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애첩으로 삼은 명문가의 여자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오사카성은 그시대 최강의 요새였다. 오사카 성은 성벽 바깥쪽으로 해자와 연못을 파서 적군이 오사카 성을 점령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7)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민출신, 글자도 잘 모르는 무식쟁이, 키도 작고 못생긴 원숭이 외모의 남자가 일본 천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인것 같다.

주식투자자라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떤식으로 당시의 일본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남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댓글 1개:

montreal florist :

자신의 야망을 위해 침략까지도 감행햇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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